『표주록(漂舟錄)』은 조선 숙종 대의 무신 이지항(李至恒)이 겪은 해난 사고와 그에 따른 표류 및 귀환 과정을 기록한 일기체 견문록이다. 1688년(숙종 14) 이지항은 강원도 정평으로 부임하기 위해 부산에서 배를 타고 북상하던 중 풍랑을 만나 일본 연해를 거쳐 북방의 여진족 거주지와 러시아 접경 지대까지 표류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낯선 지역의 풍속, 지리, 외교 관계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조선 시대 표해록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지항은 1688년 3월 25일 군관 및 사공들과 함께 부산항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동해상에서 강력한 풍랑을 만나 배가 통제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약 10일간의 사투 끝에 이들이 도착한 곳은 현재의 러시아 연해주 북쪽이자 당시 청나라의 영향권 아래 있던 여진족의 거주 지역이었다. 이지항 일행은 이곳에서 원주민들의 도움과 감시를 동시에 받으며 생존을 도모해야 했으며, 이후 청나라 관리들에게 인도되어 대륙을 관통하는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지항의 여정은 단순히 표류에 그치지 않고 만주와 북경을 거치는 대륙 육로 귀환으로 이어졌다. 그는 나단(羅丹)에서 출발하여 영고탑(寧古塔)을 거쳐 청나라와 러시아의 접경 지역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러시아인(당시 '아라사'로 불림)들과 청나라 사이의 갈등을 목격하였으며,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드물게 러시아인의 외모와 복색, 무기 등을 직접 관찰하여 기록에 남겼다. 이는 나선정벌 이후 조선이 러시아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중요한 지식적 바탕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지항은 약 6개월간의 고난 끝에 청나라 북경을 거쳐 1688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표주록』에는 그가 거쳐 간 각 지역의 거리, 지형, 기후뿐만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음식 문화와 주거 형태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특히 표류민을 대하는 청나라 관리들의 행정 절차와 외교적 대응 방식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17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와 지리적 환경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표주록』은 최부의 『표해록』이나 장한철의 『표해록』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표류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다른 표해록들이 주로 일본이나 중국 남부 연안에 국한된 것과 달리, 만주 북방과 러시아 접경 지대라는 미지의 영역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이 작품은 조선인의 세계관이 북방 대륙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실학 발생 이전의 북방 지리 인식과 이민족에 대한 관찰 기록으로서 학술적 의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