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대군(平原大君, 1427~1445)은 조선 전기의 왕족으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번째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임(琳), 자는 진지(珍之)이다. 세종의 적자 중 한 명으로서 왕실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였으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자이다.
1434년(세종 16) 평원대군으로 봉해졌으며, 어린 시절부터 성품이 온화하고 총명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학문에도 소질을 보여 유교적 소양을 쌓는 데 힘썼으며, 왕실 일원으로서 품위를 지켰다. 1437년(세종 19)에는 종부시소윤 홍용의의 딸인 강녕부부인 홍씨와 혼인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1445년(세종 27) 정월, 평원대군은 갑작스럽게 두창(천연두)에 걸려 병석에 누웠다. 세종은 의관들을 총동원하여 치료에 힘쓰고 전국의 사찰에서 기도를 올리게 하는 등 아들의 쾌유를 간절히 바랐으나, 결국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1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의 죽음은 부모인 세종과 소헌왕후에게 극심한 상실감을 안겨주었으며, 이듬해 소헌왕후가 승하하는 데에도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원대군이 사망한 후 세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정헌(定憲)'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는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후사가 없었다. 이에 따라 훗날 예종의 차남인 제안대군(齊安大君)이 그의 양자로 입적되어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이는 왕실의 직계 혈통을 보존하고 요절한 왕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조치였다.
평원대군의 묘소는 본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현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에 조성되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이장 및 정비를 거쳤다. 현재 그의 묘역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광평대군 묘역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평원대군의 생애는 비록 짧았으나, 세종 재위기 왕실의 가족사와 당시 성행했던 질병에 의한 왕실의 슬픔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