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오도르 친(러시아명 표도르 파블로비치 친)은 소련 출신의 고려인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해방 직후 북한의 초기 군대 창설과 정권 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그는 소련군 장교로서 한반도에 입국한 이른바 '소련파'의 핵심 구성원 중 한 명이었으며, 북한의 군사 체계를 구축하고 소련식 군사 교리를 이식하는 데 중추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는 1913년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장기 동안 소련의 교육 체계 내에서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소련군 장교로 복무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전쟁 중 보여준 군사적 역량과 정치적 충성심을 바탕으로, 그는 1945년 8월 일제 패망 이후 소련군 정찰국 소속으로 북한 지역에 파견되었다.
북한에 입국한 페오도르 친은 조선인민군 창설의 산실이었던 평양학원 등에서 군사 교육을 담당했다. 이후 인민군 제1사단의 참모장을 역임하며 초기 북한군의 조직화와 훈련 시스템 확립을 주도했다. 그는 소련군과 북한 지도부 사이의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으며, 소련의 선진 군사 기술과 전술을 북한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 김일성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연안파와 소련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그의 지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56년 발생한 '8월 종파 사건'을 계기로 북한 내 소련파 세력은 정치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페오도르 친 역시 친소련 성향을 가진 제거 대상으로 분류되어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북한 내의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었다.
숙청 이후 그는 소련으로 귀환하였으며, 이후 북한의 공식 기록에서 그의 이름은 대부분 삭제되었다. 페오도르 친의 생애는 민족적 정체성과 이데올로기적 충성심 사이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야 했던 고려인 엘리트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북한 군사력의 기틀을 마련한 전문가였으나, 권력 투쟁의 결과로 자신의 업적과 존재가 부정되는 비운을 겪은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