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 헤이스케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 1844~1867)는 에도 시대 말기 신선조(신센구미)에서 활동했던 무사로, 신선조의 창립 멤버이자 제8번대 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이세 쓰번의 번주였던 토도 다카유키의 사생아라는 설이 전해질 정도로 출신 성분이 고귀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북신일도류를 수련하여 상당한 검술 실력을 갖추었으며,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신선조 내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곤도 이사미가 운영하던 시에이칸 도장의 문하생들과 교류하며 신선조의 전신인 로시구미에 가담하였다. 1863년 교토로 상경한 이후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등과 뜻을 함께하며 신선조를 조직하였고, 초기 신선조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성격이 급하고 용맹하여 전투 시 항상 앞장서서 돌진하는 성향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선진(先陣)의 토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864년 발생한 이케다야 사건 당시, 토도는 곤도 이사미의 본대에 속해 가장 먼저 여관 내부로 돌입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치열한 교전 중 투구의 끈이 잘리면서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나, 부상을 무릅쓰고 끝까지 전투에 임하여 공적을 세웠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신선조 내에서 제8번대 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교토의 치안 유지와 도막파 낭인 단속에 힘썼다.

그러나 토도는 점차 신선조의 친막부적인 행보와 자신의 사상적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1867년, 그는 평소 따르던 학자 이토 가시타로가 신선조를 탈퇴하여 고료에지(어릉위사)를 결성하자 그를 따라 신선조를 이탈했다. 이는 신선조의 엄격한 규율인 '국중법도'에 위배되는 행위였으나, 당시에는 정식 절차를 거친 분리 독립의 형태를 띠었다.

결국 1867년 12월, 신선조와 고료에지의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아브라노코지 사건이 발생했다. 이토 가시타로가 암살된 후, 그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고료에지 대원들을 신선조가 습격했다. 곤도 이사미는 과거의 정을 생각하여 토도를 살려주려 했으나, 그 의도를 알지 못했던 신선조 대원 미우라 가노스케에 의해 토도는 현장에서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였으며, 막부 말기의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