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시 켄타는 일본의 프로레슬러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일본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인물이다. 1967년 교토부 후쿠치야마시에서 태어난 그는 1988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절대왕자', '불타는 강권', '철인' 등의 별명으로 불렸으며,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투혼을 상징하는 선수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시절 그는 미사와 미츠하루,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와 함께 '사천왕'으로 불리며 단체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경력 초기에는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 운영으로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으며, 이후 삼관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최고의 자리에 등극했다. 특히 미사와 미츠하루와의 라이벌 관계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를 다수 배출하며 평론가와 팬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2000년 미사와 미츠하루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이적 소동 당시 프로레슬링 노아(NOAH)의 창설에 참여했다. 노아에서 그는 제6대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서 약 2년 동안 13회의 방어에 성공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절대왕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이 시기 아키야마 준, 사사키 켄스케 등과의 경기는 흥행과 질적 측면 모두에서 정점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아를 일본 최고의 단체 반열에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경력은 부상 및 질병과의 치열한 사투로 점철되어 있다. 양쪽 무릎의 만성적인 부상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위력의 문설트 프레스를 고수했으며, 2006년에는 신장암 진단을 받아 선수 생명에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수술과 재활을 거쳐 약 500일 만에 기적적으로 링에 복귀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극적인 복귀와 투혼은 그를 단순한 운동선수를 넘어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2013년 5월 11일, 누적된 부상의 여파로 인해 공식적인 은퇴 경기를 치르며 링을 떠났다. 은퇴 후에는 자신의 프로모션인 '포춘 드림'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과 프로레슬링의 보급에 힘쓰고 있다. 그는 버닝 해머, 오렌지 크러쉬와 같은 독창적인 기술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강력한 촙 공격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버닝 스피릿' 정신으로 현대 프로레슬링계에 지대한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