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 카펠(Karol Kapel, 1888–1941)은 폴란드의 교사이자 사회 운동가로, 체신 실레지아(Cieszyn Silesia) 지역의 교육 발전과 폴란드 민족 의식 고취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전후의 격동기에 지역 사회의 교육적 기틀을 다지고 폴란드 문화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888년 7월 13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체신 인근의 포그비즈두프(Pogwizdów)에서 태어났다. 체신의 교사 세미나리에서 교육을 받은 뒤 교직에 진출하였으며, 스코추프(Skoczów) 등지의 여러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아동 교육에 매진했다. 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폴란드어 교육을 통해 피압박 민족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사회적으로는 '체신 공국 학교 모태(Macierz Szkolna Księstwa Cieszyńskiego)'와 같은 교육 및 문화 단체에 소속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폴란드 학교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역 내 폴란드 교사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활동에도 앞장섰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간의 국경 분쟁 시기에는 폴란드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에 참여하며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이끌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나치 독일의 지식인 숙청 정책인 '인텔리겐츠아크티온(Intelligenzaktion)'의 표적이 되었다. 1940년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된 그는 다하우(Dachau) 강제 수용소를 거쳐 마우트하우젠-구센(Mauthausen-Gusen)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는 수용소 내의 가혹한 환경과 고된 강제 노동 속에서도 신념을 지켰으나, 결국 1941년 2월 23일 구센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카롤 카펠의 생애는 후대 폴란드 교육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그가 활동했던 지역 사회에서는 그를 기리는 기록들이 보존되고 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지식인의 책무를 다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의 헌신은 체신 실레지아 지역 역사에서 폴란드 민족 정신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