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신(崔元信, 1891~1928)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외교 및 언론 활동을 전개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본관은 통천이며 황해도 수안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신학문을 접하며 민족의식을 키웠으며, 국내외 정세에 능통한 지식인으로서 독립운동의 이론적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3·1 운동에 참여한 최원신은 이후 보다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임시의정원의 황해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입법 활동에 종사하였다. 그는 임시정부의 초기 기틀을 잡는 과정에서 여러 정파 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행정적인 실무를 담당하며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외교 분야에서 나타났다. 최원신은 임시정부 외무부 비서국장과 외무차장 대리 등을 역임하며 국제 사회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특히 파리 강화 회의와 워싱턴 회의 등 당시의 주요 국제 회담에 대응하여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문건을 작성하고, 해외 언론 및 외교관들과 접촉하며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다각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다.
언론인으로서의 활동 또한 최원신의 중요한 행보 중 하나였다. 그는 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신문 발간 및 기고 활동에 매진하였다. 『시대일보』의 창간에 관여하고 기자로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발휘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 실상을 폭로하였다. 그의 문필 활동은 대중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동시에 독립운동 진영 내의 이론적 지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다.
최원신은 독립운동 진영 내부의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통합을 위해 힘썼으나, 1928년 중국 상해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죽음은 당시 독립운동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그의 헌신적인 활동은 후대 독립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함으로써 그의 고귀한 희생과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