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익

최근익(崔謹益, 1904년 ~ ?)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초기 활동한 정치인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평안남도 대동군 출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중반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 무장 투쟁과 사회주의 운동에 전념하였으며, 해방 후 북한 정권 내 연안파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20년대 초 중국으로 망명하여 화성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혁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대에는 화북 지역에서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조직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일제와의 전투 및 선전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경력은 그가 해방 후 북한 정권의 핵심 지도부로 진입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평양으로 귀국한 최근익은 북조선신민당의 창당에 참여하였고, 신민당이 북조선로동당으로 합당된 후에도 중앙위원 등 요직을 거쳤다. 정권 수립 이후에는 국가검열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북한의 법적·행정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연안파 세력의 일원으로서 김두봉, 최창익 등과 함께 활동하며 초기 북한 정치권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1956년 발생한 '8월 종파 사건'은 그의 정치적 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연안파와 소련파 인사들은 김일성의 1인 독재 체제 강화와 중공업 우선주의 경제 정책에 반대하며 집단 지도 체제를 요구했으나, 김일성 세력의 반격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최근익은 이 과정에서 반당 종파 분자로 낙인찍혀 모든 공직에서 해임되었으며, 당에서 제명되는 숙청을 당하였다.

최근익의 숙청 이후 행적과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는 연안파의 다른 지도급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탄압을 받았으며, 지방으로 유배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실각과 숙청은 북한 현대사에서 집단 지도 체제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