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선(崔慶善)은 1879년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에서 태어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3·1 운동 당시 경기도 광주 지역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평범한 농민이었으나 일제의 무단 통치와 민족적 억압에 맞서 민족 자결의 의지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1919년 3월 하순, 고종의 인산과 서울의 3·1 운동 소식이 경기도 광주 일대에도 전해지자 최경선은 인근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는 3월 27일 오포면 일대에서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을 조직하고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는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 등을 향해 행진하며 일제의 식민 지배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당시 광주 지역의 시위는 매우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최경선은 주민들의 기세를 북돋우며 시위가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제 헌병대가 무력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였으며, 최경선은 시위대의 중심 인물로 지목되어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최경선은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며 고초를 겪었으나 끝까지 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경선의 활동은 중앙의 지도부가 아닌 지역 사회의 인물이 주도한 풀뿌리 독립운동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그의 투쟁은 광주 지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