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군

종의군(宗義君)은 조선의 제3대 국왕인 태종의 서자이자 11남이다. 이름은 이귀생(李貴生)이며, 어머니는 신빈 신씨(信嬪 辛氏)이다. 신빈 신씨는 태종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후궁 중 한 명으로, 종의군을 포함하여 함녕군, 온녕군, 제성군 등 여러 왕자와 옹주를 낳았다. 종의군은 왕실의 일원으로서 왕실의 위엄을 나타내는 종친의 위치를 지켰다.

세종 재위 기간인 1433년(세종 15)에 정식으로 종의군에 봉해졌다. 그는 평소 성격이 구속받기를 싫어하고 호탕한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조정의 법도를 어기거나 왕실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을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는 일이 잦았다. 특히 기생과의 염문이나 상중에 유흥을 즐긴 일 등이 문제가 되어 형인 세종으로부터 여러 차례 훈계와 처벌을 받기도 했다.

종의군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주로 그가 저지른 비행과 그에 따른 처벌에 관한 내용이 많다. 그는 한때 관직과 직첩을 몰수당하고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왕실 종친이라는 신분상의 특수성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복권되어 왕실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세종은 그의 허물을 꾸짖으면서도 동생으로서의 우애를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세조가 즉위한 이후에는 원로 종친으로서 예우를 받았다. 세조는 숙부인 종의군에게 토지와 노비 등을 하사하며 왕실의 결속력을 다지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종의군은 1461년(세조 7)에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 조정에서는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의 묘소는 당초 경기도 양주에 조성되었다가 이후 이동하는 과정을 거쳤다.

종의군은 전주 이씨 종의군파의 파시조가 된다. 그의 후손들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종친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며 가문을 이어갔다. 오늘날에도 후손들에 의해 그를 기리는 제향이 이어지고 있으며, 태종의 여러 자손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가계를 형성하여 한국 성씨 역사 및 왕실 가계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