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3년

1433년은 율리우스력으로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조선 세종 15년에 해당하는 해로, 국방과 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국가적 성취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특히 군사적인 면에서는 북방 영토 확장의 중요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세종의 명을 받은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이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의 지류인 파저강(婆猪江) 유역에 거주하던 여진족 이만주(李滿住)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했다. 이 파저강 전투의 승리는 이후 조선이 압록강 상류 지역에 4군(四郡)을 개척하여 북방 국경선을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해에는 조선의 천문학과 과학 기술 역시 크게 도약했다. 세종의 지시 아래 정초, 이천, 장영실 등이 참여하여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관측 기구인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했다. 혼천의의 완성은 조선이 독자적인 천문 관측 능력을 갖추고 역법을 정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농업 중심 국가였던 조선에서 백성들에게 정확한 절기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세종의 애민 정신과 과학 진흥 정책이 결실을 맺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의학 분야에서는 조선 전기 한의학을 집대성한 중요한 의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1433년에 간행되었다. 유효통, 노중례, 박윤덕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이 책은 중국산 약재인 당재(唐材)에 의존하던 기존의 의료 관행에서 벗어나,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약재인 향약(鄕藥)을 활용한 치료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독자적인 의학 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백성들이 값비싼 중국산 약재 대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의학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세계사적으로 1433년은 명나라의 해상 팽창이 막을 내리는 전환점이 된 해이다. 명나라 영락제의 명으로 시작되어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진출했던 정화(鄭和)의 제7차 원정이 이 해에 종료되었다. 정화는 마지막 원정에서 귀환하던 중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죽음 이후 명나라는 대규모 원정을 중단하고 해금(海禁) 정책을 강화하며 대외적인 해양 진출을 축소하였고, 이는 훗날 아시아 해상 교역의 판도가 변화하는 역사적 결과를 낳았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Sigismund)가 교황 에우제니오 4세로부터 정식으로 황제 대관식을 치렀다. 지기스문트는 서방 교회의 대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콘스탄츠 공의회를 주도했던 인물로, 1433년 로마에서 왕관을 수여받으며 제국의 권위를 다시 한번 공고히 하려 했다. 한편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여전히 백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으며, 이 시기의 유럽은 르네상스의 태동과 함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복잡한 정치적, 문화적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