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류큐국(현재의 오키나와)의 관계는 14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동아시아의 중요한 외교 및 교무 관계였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으나 바닷길을 통해 사절을 교환하고 물자를 거래하며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은 류큐를 중국 중심의 조공 질서 안에서 '교린(交隣)'의 대상으로 인식했으며, 일본의 여러 제후국보다 격이 높은 독립 국가로 대우했다.
공식적인 교류는 고려 말인 1389년 류큐의 찰도왕이 사신을 보내며 시작되었고,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 더욱 본격화되었다. 류큐는 주로 유황, 주석, 후추, 목향 등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특산물을 조선에 바쳤으며, 조선은 이에 대한 답례로 면포, 저포, 곡물, 그리고 불교 경전인 대장경 등을 전달했다. 특히 조선의 불교 서적과 유교 문화는 류큐의 문화적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은 표류민의 송환 문제였다. 동중국해의 거친 해로로 인해 조선의 어민이나 관리가 류큐로 표류하거나, 반대로 류큐인이 조선 해안에 도달하는 일이 빈번했다. 두 나라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표류민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원칙을 지켰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기록들은 상대국에 대한 지리, 풍속, 언어 정보를 습득하는 주요 통로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 활발했던 양국의 직접적인 교류는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1609년 일본 사쓰마번의 류큐 침공 이후 변화를 맞이했다. 류큐가 일본의 간섭을 받게 되면서 조선으로 향하는 사절의 파견이 점차 줄어들었고, 교류의 성격도 직접 무역보다는 일본이나 청나라를 통한 간접적인 형태로 변모했다. 이후 1879년 일본 제국이 류큐 처분을 단행하여 오키나와현을 설치함으로써 양국의 독자적인 외교 관계는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