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운기는 고려 충렬왕 13년(1287)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저술한 역사 서적이다.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운율이 있는 시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그 아래에 주석을 덧붙인 영사시(詠史詩)로, 상·하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와 더불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책의 구성은 중국의 역사를 다룬 상권과 한국의 역사를 다룬 하권으로 명확히 나뉜다. 상권은 반고의 천지개벽 신화부터 금나라까지의 중국 역사를 7언시로 기술하였다. 하권은 「동국군왕개국연대」라는 제목 아래 단군조선부터 저술 당시인 고려 충렬왕 때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서술 방식에 있어 고려 이전의 역사는 중국사와 같은 7언시로, 고려 건국 이후의 역사는 5언시로 작성하여 구분한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사서적 의의는 단군을 우리 민족의 확고한 시조로 설정하고 한국사의 독자적 정통성을 세웠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군조선에서 시작하여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정리하고, 부여, 옥저, 예맥, 삼한 등을 모두 단군의 후예로 파악하여 민족사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특히 신라와 대립했던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한국사의 일부로 명확히 서술하여 최초로 남북국 시대의 인식을 보여주었다. 이는 발해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하거나 소홀히 다루었던 이전의 사서들과 구별되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제왕운기가 저술된 시기는 고려가 몽골(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로, 이승휴는 이러한 민족적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 역사의 유구함과 주체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책의 서문과 본문 전반에는 한국사를 중국사와 대등한 위치에 놓고 서술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며, 우리 겨레를 요동 별천지의 독자적인 문명권으로 규정했다. 즉, 이 책에는 고려가 중국의 변방이나 속국이 아니라 독립된 역사를 가진 '제왕'의 국가임을 천명하려 했던 자주적인 역사 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현존하는 제왕운기 판본은 조선 태종 때 간행된 목판본을 비롯하여 여러 이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승휴의 이러한 저술 작업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넘어 문학적인 형식을 빌려 역사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시도였으며, 후대 조선 성리학자들의 역사 인식 형성과 시가 문학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