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2세(Zero II)는 스파이크 춘소프트의 어드벤처 게임 ‘극한탈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제로 타임 딜레마》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자 흑막이다. 그는 아홉 명의 참가자를 디컴(Dcom) 실험 시설 지하 벙커에 가두고 생존을 건 ‘디시전 게임(Decision Game)’을 강요하는 사회자 역할을 수행한다. 작중 초기에는 흑사병 의사 가면을 쓰고 기계로 변조된 목소리를 사용하여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 통신으로만 명령을 내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제로 2세의 본명은 델타(Delta)이며,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시그마 릴과 다이애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벙커 내부에 설치된 물질 전송 장치인 ‘트랜스포터’를 통해 1904년의 과거로 보내졌으며, 이 과정에서 여동생인 파이와 함께 거대한 시간의 역설을 형성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복잡하게 얽힌 타임라인 속에서 자신의 탄생을 확정 짓기 위해 디시전 게임이라는 잔혹한 사건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그는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평행세계를 이동하는 ‘시프트(SHIFT)’ 능력을 직접적으로 갖추지는 못했으나, 타인의 마음을 읽고 의식을 조종할 수 있는 ‘마인드 해킹(Mind Hack)’이라는 강력한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참가자들 틈에 섞여 있었으나, 시각과 청각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 마인드 해킹을 통해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조종해 왔다. 이는 플레이어의 시야 밖에서 벌어지는 서사적 트릭으로 활용되어 정체 공개 시 큰 반전을 선사한다.
제로 2세가 게임을 개최한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자신의 탄생을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절멸을 막기 위함이다. 그는 미래에 발생할 전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이름 모를 광신도를 저지하기 위해, 확률적으로 극히 낮은 가능성을 가진 ‘인류가 생존하는 타임라인’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는 이를 ‘복잡한 동기(Complex Motives)’라고 지칭하며,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인류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공리주의적이고 냉혹한 철학을 견지한다.
결과적으로 제로 2세는 극한탈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인과율의 고리를 완성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존재와 행보는 전작들에서 제시된 수많은 수수께끼를 해소하는 열쇠가 되는 동시에, 자유 의지와 운명론 사이의 갈등을 상징한다. 그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인류 생존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악역으로 자처하며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려 한 관찰자이자 집행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