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봉(鄭一鳳, 1906~1981)은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남도 합천 출신인 그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며 일제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학생 운동의 핵심 인물로 성장하였다. 그는 단순한 동맹휴학 수준을 넘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동료 학생들과 긴밀히 교류하였다.
1929년 6월, 정일봉은 장재성 등과 함께 학생 비밀 결사인 ‘독서회 중앙본부’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각 학교의 독서회를 통합하여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일제 타도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독서회 중앙본부의 조사부 위원을 맡아 조직의 내실을 다지고 학생들의 결집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자, 정일봉은 시위를 이끄는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학생들을 독려하여 가두시위를 주도하고 항일 격문을 배포하는 등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 운동은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으로 발전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로 인해 정일봉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며, 193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구복심법원에서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수감 생활 중에도 민족의 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출옥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감시를 받으면서도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고 투쟁의 의지를 이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일봉의 숭고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77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그는 학생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청년들의 애국심과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역사적 표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활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학생들의 조직적인 역량이 어떻게 거대한 민족적 저항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