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순

정기순(鄭基順, 1930~ )은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양태) 보유자이다. 갓일은 조선시대 성인 남성이 머리에 쓰던 의례용 모자인 갓을 만드는 과정을 말하며, 정기순은 그중에서도 갓의 테두리 부분인 양태(凉太)를 제작하는 기술에서 뛰어난 숙련도를 인정받은 기능인이다.

제주도 제주시 화북동에서 태어난 정기순은 제주 지역의 가내수공업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양태 제작 기술을 접하며 성장하였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양태의 원료인 대나무가 풍부하고 여성들의 부업으로 양태 엮기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평생을 갓일의 전승과 보전에 힘써왔다.

양태 제작은 대나무를 아주 가늘게 쪼개어 실처럼 만든 '대올'을 촘촘하게 엮어가는 섬세한 작업이다. 정기순이 구사하는 기술은 대나무를 삶고 말리는 전처리 과정부터 수천 개의 대올을 일정한 간격으로 엮어내어 갓의 형태를 잡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가 제작한 양태는 결이 고르고 탄력이 뛰어나며, 전통적인 미감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기순은 전통 공예의 맥이 끊길 위기 속에서도 전승 활동을 지속하였다. 1980년대에 갓일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된 이후, 2000년 7월 22일에 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양태) 보유자로 공식 인정되었다. 이는 그가 보유한 기술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국가적으로 공인받은 결과였다.

그는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후진 양성에 힘쓰며 갓일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고 있다. 기계화가 불가능한 수작업의 영역인 양태 제작의 원형을 고수함으로써 한국 전통 복식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를 지켜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기순의 삶과 예술은 한국 전통 공예의 명맥을 잇는 산증인으로서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