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1948~1970)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이자 평화시장 재봉사로,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어린 나이부터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1964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보조 노동자인 '시다'로 일을 시작한 그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동료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며 노동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평화시장의 노동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환기 시설조차 없는 좁은 다락방 형태의 작업장에서 어린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으며, 폐질환과 안질 등 각종 직업병을 앓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태일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독학으로 근로기준법을 공부했으며, 법이 규정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는 1969년 노동 실태 조사와 근로 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노동청과 서울시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언론에 평화시장의 실태를 알리는 등 평화적인 방법으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사업주들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거나 기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전태일은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계획하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으나, 이마저도 경찰의 방해와 당국의 무관심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그는 불길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쓰러졌다. 그의 장렬한 희생은 당시 경제 성장에만 몰두하며 노동자의 인권을 외면하던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지식인과 학생 계층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는 등 민주 노동운동의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그의 희생 정신은 이후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다. 오늘날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형적인 인물로 추앙받으며,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