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호(全在浩, 1883~1921)는 일제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무장 독립 투쟁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며, 강원도 강릉군(현 강릉시) 출신이다. 그는 국권 피탈 이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무장 투쟁의 선봉에 섰다.
만주로 이주한 전재호는 북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담하였다. 북로군정서는 김좌진이 총사령관을 맡아 체계적인 군사 훈련과 무장력을 갖춘 독립군 부대로, 전재호는 이곳에서 소대장(小隊長) 직책을 맡아 병사들을 통솔하고 실전 능력을 배양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엄격한 훈련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독립군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 10월, 전재호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중 하나인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는 북로군정서 제1대대 소속으로 백운평(白雲坪) 전투 등 주요 격전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험준한 지형을 활용한 매복 작전과 과감한 공격을 통해 일본군 정규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으며, 이 과정에서 뛰어난 지휘력과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청산리 전투의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이 간도 참변을 일으키며 독립군을 압박하자, 전재호는 부대원들과 함께 러시아 접경 지대인 밀산(密山)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집요한 추격은 계속되었고, 1921년 밀산 인근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나, 끝내 1921년 7월에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재호의 삶은 만주벌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무명 독립군들의 기개와 헌신을 상징하며, 오늘날까지 후대에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