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군(全城君)은 조선 시대 왕실 종친에게 부여되었던 봉작 중 하나이다. 전성(全城)은 오늘날 전라북도 전주시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전당군이라는 명칭은 주로 이 지역을 관향으로 삼거나 연고가 있는 종친에게 하사되었다. 조선의 작위 제도에서 '군(君)'은 왕의 서자나 대군의 아들, 또는 공로가 있는 종친에게 주어지는 지위로, 전당군 역시 이러한 체계 안에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에게 부여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초기의 종친인 이필(李泌)을 들 수 있다. 그는 태종의 손자이자 효령대군의 장남으로, 처음에는 전성정(全城正)에 봉해졌으나 이후 전성군(全城君)으로 승격되었다. 그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세종, 세조, 성종 대를 거치며 종친의 어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성품이 온순하고 행실이 발랐으며, 왕실 내의 대소사에 참여하여 가문의 화목을 도모하는 데 힘썼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전당군 이필은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왕실의 제사나 연회 등 국가적인 행사에 빈번히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효령대군의 장남으로서 부친을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동생들인 보성군, 낙안군 등과 함께 종친부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성종 대에 이르러서는 종친 중에서도 고령에 속하여 국가로부터 궤장(지팡이와 의자)을 하사받는 등 원로로서 예우를 받았다.
전당군이라는 작위는 왕실 혈통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장치였다. 조선 사회에서 종친은 정치적 권력에서는 일정 부분 소외되었으나, 경제적으로는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아 유족한 생활을 영위했다. 전당군은 이러한 종친 제도의 틀 안에서 왕실의 번영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며, 그가 남긴 행적은 현재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의 족보와 관련 사료를 통해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당군은 조선 전기 왕실 종친의 전형적인 삶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의 생애와 작위는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조선의 종친 관리 제도와 예법, 그리고 왕실 가문이 어떻게 유지되고 운영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단초를 제공한다. 그와 관련된 유적이나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해당 가문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며, 한국 중세 왕실사 연구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