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운(독립운동가)

장지운(張志雲, 1888~1924)은 일제강점기 의열단(義烈團)에 소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 투쟁에 투신하였으며, 평화적인 시위만으로는 독립을 쟁취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무력을 통한 직접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항일 비밀결사인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장지운은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지시를 받아 곽재기(郭在驥), 이성우(李成宇) 등과 함께 대규모 폭탄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주된 목표는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제의 주요 수탈 및 통치 기관을 파괴하고 고위 관료들을 암살하여 식민 통치에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장지운은 폭탄을 국내로 밀반입하고 이를 경성으로 운반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며 거사의 성공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거사 실행을 앞두고 일제 경찰의 삼엄한 수사망에 정보가 노출되면서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른바 ‘제1차 의열단 사건’으로 알려진 이 과정에서 장지운은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당시 일제는 의열단의 배후와 추가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장지운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했으나, 그는 끝까지 조직의 기밀을 발설하지 않으며 항일 투사의 기개를 지켰다.

재판 결과 장지운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오랜 수감 생활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나, 그는 감옥 안에서도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며 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형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1924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장지운의 활동은 의열단 초기의 무력 투쟁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그의 투쟁 정신은 이후 전개된 수많은 항일 무장 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유해는 현재 국립신암선열공원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