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환(張翼煥, 1866~1904)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의 무신이자 관료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자는 치범(致範), 호는 규당(圭堂)이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제국의 군사적 자립과 행정 체제 정비를 위해 활동한 인물로, 국방과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책을 맡아 수행하였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후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군제 개편이 이루어질 당시, 신식 군대인 친위대(親衛隊)의 부령(副領) 등으로 재직하며 중앙 군사 조직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하였다. 서구의 군사 지식과 근대적 훈련 방식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대한제국 성립 시기에 맞추어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무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1896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 공사관의 무관(武官)으로 근무하며 일본의 근대화된 군사 시설과 제도를 시찰하였다. 당시 장익환은 선진적인 군사 체계를 직접 목격하고 이를 조선의 상황에 접목할 방안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외교적 경험은 그가 이후 군부 내에서 군사 행정 전문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귀국 후 병기 도입과 훈련 체계 개선 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장익환은 군무의 핵심 요직인 군부 협판(軍部協辦)과 원수부(元帥府)의 주요 보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황제 직속의 군사 지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군사 업무 외에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과 법부 협판 등 행정과 사법 분야의 고위직을 거치며 국정 전반에 참여하였다. 이는 그가 무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문무를 겸비한 관료로서 조정의 신뢰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장익환의 생애는 외세의 압력이 거세지던 시기, 자주적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대한제국기 관료의 활동상을 잘 보여준다. 1904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추진했던 군제 개혁과 행정적 시도들은 한국 근대사에서 국방 현대화를 꾀했던 중요한 과정의 일부로 평가받는다. 그의 행적은 구한말 군사 행정 연구 및 근대 관료의 지향점을 살피는 데 유효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