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드라트르 드타시니

장 드라트르 드타시니(Jean de Lattre de Tassigny, 1889~1952)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군인이자 프랑스 원수이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프랑스 제1군을 이끌어 자국 영토 수복과 독일 본토 진격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뛰어난 전략적 안목과 강렬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으며, 사후에 프랑스 원수로 추서되었다.

1889년 방데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기병 장교로 임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인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제14보병사단을 지휘하며 독일군을 상대로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프랑스의 패배 이후 비시 프랑스군에 잔류했다. 그러나 1942년 독일군이 프랑스 남부 전역을 점령하려 하자 이에 저항하려다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1943년 탈옥에 성공하여 영국을 거쳐 알제리의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했다.

그는 자유 프랑스군의 주력인 'B군단(이후 프랑스 제1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944년 8월 남프랑스 상륙 작전인 드라군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군대는 마르세유와 리옹을 탈환하고 알자스 지방의 콜마르 포위전을 승리로 이끄는 등 프랑스 영토를 수복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라인강을 건너 독일 본토로 진격했으며, 1945년 5월 8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의 무조건 항복 조인식에 프랑스 대표로 참석하여 프랑스가 전승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전후에는 육군 참모총장과 서유럽 연합군 지상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전황이 악화되자 인도차이나 고등판무관 겸 총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프랑스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드라트르 라인'이라 불리는 방어선을 구축하여 비엣민의 공세를 막아내는 등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아들 베르나르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군 지휘에 매진하여 전황을 일시적으로 반전시켰다.

하지만 인도차이나에서의 과로와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1952년 1월 15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국장을 거행하고 장례식 당일 그를 프랑스 원수로 추서했다. 그는 군사적 재능뿐만 아니라 병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탁월한 통솔력을 보여주었으며, 현대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