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피스

이피스(Iphi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이름이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은 크레타섬 출신으로,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신의 은총을 입어 남성으로 변모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주로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저술한 『변신 이야기』 제9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피스의 서사는 성별의 경계와 신적인 개입을 통한 운명의 극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크레타의 가난한 농부 리그두스와 그의 아내 텔레투사 사이에서 이피스가 태어날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리그두스는 아내가 딸을 낳으면 양육할 능력이 없으니 죽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그러나 출산을 앞둔 텔레투사의 꿈에 이시스 여신이 나타나, 아이가 태어나면 성별에 상관없이 키우라고 계시하며 도움을 약속했다. 딸이 태어나자 텔레투사는 남편에게 아들을 낳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이에게 남녀 공통으로 사용되던 이름인 '이피스'를 지어준 뒤 남자로 키웠다.

이피스가 장성하자 아버지는 그녀를 텔레스테스의 딸인 아름다운 여인 이안테와 정혼시켰다. 두 사람은 유년 시절부터 함께 교육받으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실제 성별을 알고 있던 이피스는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피스는 여성인 자신이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상황에 절망하며 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텔레투사 역시 딸의 비밀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하며 결혼식을 미루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결혼식 전날, 텔레투사와 이피스는 이시스 신전을 찾아가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이때 이시스 여신의 제단이 흔들리고 신전 문에 달린 등불이 밝게 빛나는 전조가 나타났다. 신전을 나오던 이피스의 걸음걸이가 힘차지고 피부색이 짙어졌으며, 짧았던 머리카락과 골격이 남성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이피스는 남성의 모습으로 이안테와 혼례를 치렀으며, 이 기적을 기리기 위해 이시스 신전에 감사의 봉헌물을 바쳤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는 이피스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들도 존재한다. 키프로스 출신의 청년 이피스는 귀족 여인 아낙사레테를 짝사랑했으나, 그녀의 냉담한 거절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집 문틀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또한 아르고호의 원정대원 중 한 명인 아카스토스의 아들 이피스, 테베를 공략한 일곱 장수 중 한 명인 카파네우스의 아버지 이피스 등이 신화의 지엽적인 부분에서 언급된다. 이처럼 이피스는 고대 신화 속에서 주로 변신이나 비극적인 사랑, 혹은 영웅적 계보와 관련된 인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