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티마 8: 페이건(Ultima VIII: Pagan)은 오리진 시스템즈가 개발하고 1994년에 출시한 롤플레잉 게임이다. 울티마 시리즈의 본편 중 여덟 번째 작품으로, 전작인 울티마 7에서 이어지는 가디언 사가의 중반부를 다룬다. 가디언에 의해 '페이건'이라는 이세계로 추방당한 아바타의 여정을 그리며, 시리즈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띠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게임의 배경인 페이건은 브리타니아와는 전혀 다른 질서를 가진 세계다. 이곳은 네 명의 원소 타이탄인 하이드로스(물), 스트라토스(바람), 파이로스(불), 리토스(땅)가 지배하고 있으며, 아바타는 브리타니아로 돌아가기 위해 이들 타이탄의 힘을 빼앗아 스스로 다섯 번째 타이탄인 '에테르의 타이탄'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바타는 기존의 팔미덕을 지키는 성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금기시된 마법을 사용하는 등 냉혹한 생존자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기존의 탑다운 뷰와 파티 중심의 플레이를 버리고, 쿼터뷰 방식의 실시간 1인 액션 어드벤처 요소를 전면 도입했다. 정교한 물리 엔진을 적용하여 물건을 옮기거나 쌓는 상호작용이 가능해졌으나, 출시 초기에는 조작감이 매우 불안정했다. 특히 정교한 점프를 요구하는 지형지물이 많아 팬들 사이에서 '슈퍼 마리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으며, 이는 이후 패치를 통해 일부 수정되었다. 마법 시스템 역시 각 원소별로 시약을 조합하고 특정 도구를 사용하는 독특한 의식 방식으로 재편되었다.
그래픽과 사운드 면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다.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이 부드러워졌고 가디언의 위압적인 목소리가 담긴 음성 지원은 몰입감을 높였다. 그러나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인수 이후 촉박한 개발 일정에 쫓기면서 상당수의 콘텐츠가 삭제된 채 미완성 상태로 출시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해졌고, 급격한 게임성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기존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울티마 8은 시리즈의 핵심 가치인 '미덕'을 뒤집는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했으나, 결과적으로 시리즈의 명성을 잇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작품에서 시도된 액션 RPG 요소는 이후 여러 게임에 영감을 주었으나, 상업적인 성과와 팬들의 평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울티마 8의 부진과 개발 과정의 진통은 시리즈의 최종작인 울티마 9의 제작 지연과 방향성 상실로 이어지며 울티마 시리즈가 쇠락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