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사물, 그리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초월적인 힘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나 그 법칙을 의미한다. 한자어로는 '움직일 운(運)'과 '목숨 명(命)'을 사용하는데, 이는 생명의 흐름이나 기운이 특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동양 철학에서는 이를 하늘의 명령인 '천명(天命)'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는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힘으로 간주한다.
서구 철학에서 운명은 결정론(Determinism)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모든 사건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으며, 초기 조건이 주어지면 결과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고방식이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는 운명을 우주의 이성적 질서로 보았으며, 인간이 진정한 평온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필연적인 운명을 묵묵히 수용하고 그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근대 이후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운명 사이의 갈등이 주요한 철학적 쟁점으로 부상하며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종교적 맥락에서 운명은 신의 섭리나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그리스 신화의 모이라(Moirae)나 북유럽 신화의 노른(Norns)은 인간의 수명을 실로 자아내거나 끊는 존재로 묘사되어, 신조차 바꿀 수 없는 운명의 강력함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업(Karma)'의 개념을 통해 현재의 운명이 과거의 행위에 대한 결과임을 강조하면서도, 현재의 수행을 통해 미래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기독교의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하에 미리 정해져 있다는 교리로 운명의 신학적 측면을 보여준다.
문학 분야에서 운명은 비극적 서사를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고전 비극은 운명을 피하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그 운명을 완성하게 되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역시 인물의 성격이 곧 운명이 된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외부의 초자연적인 힘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결함이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문학은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고뇌와 투쟁을 통해 인간 실존의 한계와 가치를 탐구해 왔다.
현대 사회에서 운명은 과거의 숙명론적 의미보다는 심리학적이나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무의식이 의식화되지 않으면 그것이 삶에 외부의 운명처럼 나타난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현대 과학은 양자역학 등을 통해 세계의 불확정성을 제시하며 고전적인 결정론적 운명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운명은 단순히 정해진 결론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고유한 의미를 부여해 나가는 서사적 틀로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