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신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길흉화복, 나아가 우주의 질서를 결정하고 관장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일컫는다. 고대인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나 생명의 시작과 끝을 신성한 의지의 산물로 보았으며, 이를 의인화하여 숭배하거나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다. 운명의 신은 대개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며, 신들의 왕조차 이들이 정한 섭리에서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이라이(Moirai) 세 자매는 서구 문화권에서 운명의 신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다. 첫째 클로토(Klotho)는 생명의 실을 잣고, 둘째 라케시스(Lachesis)는 실의 길이를 재어 운명을 배당하며, 셋째 아트로포스(Atropos)는 가차 없이 실을 끊어 죽음의 순간을 결정한다. 이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포함한 세상 만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실을 관리하며, 한 번 정해진 운명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단호한 필연성을 상징한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노른(Norns)이라 불리는 세 자매가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뿌리 아래에 있는 우르드의 샘가에 거주하며 운명을 다스린다. 과거를 상징하는 우르드(Urd), 현재를 상징하는 베르단디(Verdandi), 미래를 상징하는 스쿨드(Skuld)는 나무에 룬 문자를 새기거나 운명의 실을 짜서 세상을 통제한다. 이들은 라그나로크라는 신들의 종말조차 이미 정해진 수순임을 암시하며, 북유럽 특유의 비극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동양의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특정한 단일 신격보다는 천명(天命)이나 인과응보의 법칙이 운명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으나, 민속 신앙과 도교에서는 이를 관장하는 신들이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한국 신화의 삼신할미는 아이의 탄생과 수명을 점지하는 생명의 신이며, 저승의 염라대왕은 명부에 적힌 수명에 따라 인간의 죽음을 집행한다. 또한 불교적 맥락에서의 제석천이나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칠성신 역시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운명의 신으로 받들어졌다.
운명의 신은 문학과 철학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와 대립하는 장치로 자주 사용된다. 고대 비극에서는 운명의 신이 정한 가혹한 굴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그 비극에 가까워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운명의 가혹함과 인간 존엄성의 충돌을 묘사했다. 현대에 이르러 운명의 신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넘어, 필연적인 우주의 법칙이나 피할 수 없는 인연을 상징하는 문학적 은유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