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의 결투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두 인물의 정치적 갈등과 개인적인 경쟁이 고조된다. 이 사건은 1804년 7월 11일 뉴저지주 위니운드에서 발생했다. 해밀턴은 당시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자 독립 전쟁의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버는 제3대 부통령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던 시점이었다. 이들은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달랐고, 이러한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결투의 배경에는 해밀턴이 버의 명성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사건이 있다. 해밀턴은 여러 차례 버를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묘사하며, 그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이로 인해 버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결투를 원하게 되었고, 결국 두 사람은 결투에 응하게 된다. 결투는 당시의 문화적 맥락에서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전통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결투가 진행된 날, 해밀턴은 총알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하늘로 총을 쏘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버는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밀턴에게 치명적인 총상을 입혔다. 해밀턴은 상처를 입고 몇 시간 후 사망하게 되며, 이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결투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이 사건은 둘의 개인적인 비극을 넘어서 미국 정치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에런 버는 결투 이후 정치적 경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해밀턴의 죽음은 그가 연결된 다양한 정치 세력과의 관계에도 여러 모로 영향을 미쳤다. 결투 이후 버는 신뢰성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잃게 되며, 결국 정치에서 물러나게 된다. 해밀턴의 죽음은 그가 남긴 재정 정책과 국가 건설에 대한 기여에 대한 평가를 가져오게 되며, 그 후 대중의 기억 속에 해밀턴은 더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된다. 이러한 결투는 미국의 정치 역사에서 개인의 충돌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