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숭(嚴嵩, 1480~1567)은 중국 명나라 중기의 정치인으로, 가정제(嘉靖帝) 시기에 약 20년 동안 내각수보대학사로서 권력을 독점했던 인물이다. 자는 유중(惟中)이고 호는 매계(介溪)이며 강서성 분의현 출신이다. 그는 명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간신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황제의 신임을 바탕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힌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엄숭이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가정제의 독특한 통치 방식과 관련이 있다. 가정제는 재위 중반부터 정무를 소홀히 하고 도교의 불로장생술과 제례 의식에 몰두했는데, 엄숭은 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특히 도교 제례에서 쓰이는 축문인 청사(靑詞)를 짓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황제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이를 통해 그는 경쟁자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내각의 수장인 수보대학사에 올라 조정의 전권을 장악했다.
권력을 잡은 엄숭은 아들 엄세번(嚴世蕃)과 결탁하여 극심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엄세번은 정식 과거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권세를 빌려 실권을 행사했으며, 이들 부자는 매관매직을 일삼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또한 자신들의 뜻에 어긋나는 관리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는데, 대표적으로 엄숭의 비리를 탄핵했던 양계성(楊繼盛) 등 강직한 인물들이 옥사하거나 처형당했다. 이로 인해 명나라의 관료 체계는 사유화되었고 국가의 공정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엄숭의 집권기 동안 명나라는 대외적으로도 큰 위기에 봉착했다. 북쪽에서는 몽골의 알탄 칸이 국경을 침범하여 북경 근교까지 위협했고(북로), 남쪽 해안가에서는 왜구의 약탈이 끊이지 않았다(남왜). 그러나 엄숭은 국방 강화보다는 자신의 권위 유지를 위해 군사 예산을 횡령하거나 무능한 측근들을 장수로 임명하는 등 실책을 거듭했다. 이러한 국방 경시와 실정은 명나라의 국력을 급격히 쇠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엄숭의 몰락은 서계(徐階)의 치밀한 전략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계는 엄숭처럼 청사를 지어 황제의 신임을 얻은 뒤, 엄숭 부자의 전횡과 비리를 폭로하여 가정제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1562년 엄숭은 결국 관직에서 파면되고 가산을 몰수당했으며, 그의 아들 엄세번은 몇 년 뒤 처형되었다. 엄숭은 고향으로 쫓겨나 빈곤 속에서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사망했다. 사후 그는 《명사(明史)》의 〈간신전(奸臣傳)〉에 수록되어 후대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