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楊花)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인근 한강 북안에 위치했던 옛 나루터인 양화진(楊花津)을 일컫는 지명이다. 조선 시대 한강의 주요 도선장 중 하나로, 한양과 서해안 및 강화도 방면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양화라는 명칭은 인근에 버드나무가 많아 봄이면 버들꽃이 휘날렸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버들꽃 나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양화진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 시대 조운로의 종착지 중 하나로서 전라도와 충청도 등 남부 지방에서 올라온 세곡을 하역하고 보관하는 창고가 인근에 밀집해 있었다. 또한 한성부로 들어가는 핵심 관문이었기에 군사적 방어 시설인 진(鎭)이 설치되었으며, 별망군이 주둔하며 강안을 경계하고 도강 인원을 통제하는 등 치안을 유지하였다.
경관이 수려하여 예부터 문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도 이름을 떨쳤다. 한강의 빼어난 여덟 가지 경치를 일컫는 '경도팔영' 중 하나인 '양화나루의 달맞이'가 이곳의 풍경을 상징한다. 서강, 마포와 함께 삼진(三津)으로 불렸으며, 주변의 절벽인 잠두봉과 어우러진 강줄기의 풍광은 조선 시대 수많은 시문과 진경산수화의 소재가 되었다.
근대사에서는 외세의 침입과 종교적 박해의 현장이기도 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함이 양화진까지 거슬러 올라와 무력시위를 벌였으며, 이를 계기로 천주교 신자들을 대거 처형한 병인박해가 일어나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이후 개항기에는 양화진 외인묘지가 조성되어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외국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이 이곳에 안장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양화는 양화대교와 양화한강공원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의 나루터 기능은 사라졌으나, 1965년 준공된 양화대교는 서울의 남북을 잇는 핵심 교통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양화 일대는 역사적 유적지와 현대적 휴식 공간이 공존하는 장소로서, 한강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