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볼드 필립 프림로즈(Archibald Philip Primrose, 5th Earl of Rosebery, 1847년 5월 7일 ~ 1929년 5월 21일)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제5대 로즈버리 백작이다. 그는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뒤를 이어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냈다. 자유당 내의 제국주의 분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탁월한 웅변 실력과 방대한 지식으로 당대 정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런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교육받았다. 청년 시절 그는 인생의 세 가지 목표로 재벌의 상속녀와 결혼하는 것, 경마 대회인 더비(Derby)에서 우승하는 것, 그리고 영국의 총리가 되는 것을 꼽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는 1878년 당대 최고의 부호 가문이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해나와 결혼하며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으며, 이후 나머지 두 목표도 모두 달성하는 비범한 생애를 살았다.
정치적으로 그는 글래드스턴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1886년과 1892년에 외무장관직을 역임하며 영국의 외교 정책을 주도했다. 그는 자유당 내에서 이른바 '자유제국주의(Liberal Imperialism)'를 옹호하며 대영제국의 유지와 확장을 중시했다. 이러한 입장은 당내 급진파 및 소영국주의자들과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했으나, 외교적 수완 면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1894년 글래드스턴이 사임하자 로즈버리는 총리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그의 내각은 순탄치 않았다. 하원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윌리엄 하코트와의 극심한 불화가 정부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고, 상원 개혁 문제와 아일랜드 자치안 등을 둘러싼 당내 의견 차이도 좁히지 못했다. 결국 그의 내각은 1895년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며 15개월이라는 짧은 임기를 마쳤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점차 당의 주류에서 멀어졌다. 1896년 자유당 당수직을 사임한 그는 이후 '고독한 고랑(lonely furrow)'을 갈겠다고 선언하며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보였다. 만년에는 경마에 몰두하여 생애 통산 세 차례나 더비 우승을 차지했으며, 나폴레옹과 윌리엄 피트 등에 관한 역사 전기를 집필하는 등 문필가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그는 1929년 서리주의 엡섬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