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고 츠네히사

아마고 츠네히사(尼子経久)는 일본 전국시대 초기부터 중기에 걸쳐 활약한 다이묘이자 아마고씨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모리 모토나리, 우키타 나오이에와 더불어 '주고쿠의 3대 모장(謀将)'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하극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즈모국을 거점으로 산인과 산요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츠네히사는 젊은 시절 주군인 교고쿠씨로부터 이즈모 수호대리직을 박탈당하고 거점인 갓산토다성에서 추방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1486년 설날, 축제 공연단으로 위장하여 성에 잠입하는 기지를 발휘해 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주변 영주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며 독자적인 세력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전성기 시절의 아마고 츠네히사는 소위 '아마고 11개국'이라 불리는 광대한 영토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뛰어난 지략과 외교술을 바탕으로 서쪽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오우치씨와 대립하며 세력을 넓혔다. 특히 당시 일본 최대의 은광이었던 이와미 은광을 장악하여 경제적 기반을 다졌으며, 가신단 내부에 '신칸유슈'라는 직속 부대를 창설하여 군사력을 강화했다.

그는 가신들에게 매우 관대하여 자신의 옷이나 가구까지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포용력이 뛰어났다. 이러한 성품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인 영주들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냉철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도 지녀, 필요할 때는 잔혹한 수단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거나 배신을 응징하는 단호함을 보이기도 했다.

1541년, 84세의 고령으로 갓산토다성에서 생을 마감했다. 츠네히사의 사후, 아마고씨는 급부상하는 모리 모토나리의 공세와 후계 구도의 불안정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낮은 지위에서 시작해 대영주로 자수성가한 전국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