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1591~1666)은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활동한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며 천문학자이다. 중국식 이름은 탕약망(湯若望)이다. 그는 서구의 앞선 과학 기술, 특히 천문학과 대포 주조 기술을 중국에 전파하여 동서양 문화 교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619년 마카오에 도착한 그는 이후 북경으로 진출하여 서광계 등과 함께 서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역법 개정 작업에 참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명나라 숭정제 시기에 아담 샬은 서광계의 뒤를 이어 『숭정역서』 편찬을 주도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중국 역법의 오류를 서양의 기하학과 천문학 지식으로 보완한 획기적인 저술이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한 뒤에도 그는 뛰어난 과학적 식견을 인정받아 관직에 머물 수 있었다. 청나라 조정은 그를 천문 관측 기구인 흠천감의 책임자(흠천감정)로 임명하였으며, 그는 『숭정역서』를 개정하여 『시헌력』을 완성하였다. 이 역법은 청나라의 공식 역법으로 채택되었으며, 훗날 조선에도 도입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아담 샬은 청나라 순치제와 매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순치제는 아담 샬을 '마파(Ma-fa,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깊이 신뢰하였고, 그에게 광록대부와 통정사 등 높은 관직을 수여하였다. 이러한 황제의 총애를 바탕으로 그는 북경 내에 천주당인 남당을 건립하고 포교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는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황제의 자문역으로서 정치와 과학 전반에 걸쳐 조언하며 조정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한국 역사와의 접점에서는 소현세자와의 교류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북경에 머물던 소현세자는 아담 샬과 자주 왕래하며 서양의 과학 지식과 천주교 신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담 샬은 세자에게 천문 서적, 지구의, 천주상 등을 선물하였으며, 이는 조선에 서구 문물이 직접적으로 소개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비록 소현세자의 조기 사망으로 인해 서학의 전파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이들의 만남은 조선 지식인들이 서구 문명을 인식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순치제가 사망하고 강희제가 즉위한 초기, 아담 샬은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였다. 보수파 관료인 양광선 등이 서양 역법의 오류를 주장하며 그를 모함한 '역옥(曆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아담 샬은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북경에 발생한 대지진을 하늘의 경고로 해석한 황실의 결정에 의해 사면되었다. 그러나 투옥 생활과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그는 1666년 북경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 강희제에 의해 모든 관직과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그가 남긴 학문적 성과와 문화적 유산은 동아시아 근대 과학사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