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년은 서기 7세기의 한 해로,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건국된 직후 정국을 안정시키던 시기였다. 당 고조 이연은 수나라 멸망 이후의 혼란을 수습하며 무덕(武德)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시기 당나라는 중국 내부의 잔존 세력들을 토벌하며 중앙 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했으며, 주변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고구려에서는 영류왕 재위 2년째를 맞이했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오랜 전쟁을 끝낸 후 새롭게 등장한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당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했다. 이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대외적 평화를 유지하고 전쟁으로 지친 국가를 재건하려는 시도였다. 같은 시기 신라와 백제 또한 각각 진평왕과 무왕의 통치 아래 영토 분쟁을 지속하며 세력 균형을 꾀하고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 619년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에게 중대한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 이슬람 역사에서는 이 해를 '슬픔의 해'라고 부르는데, 무함마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아내 하디자와 보호자 역할을 했던 숙부 아부 탈리브가 잇따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무함마드는 메카 내에서의 정치적 보호막을 잃게 되었으며, 이는 이후 이슬람 공동체가 메디나로 이주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아시아와 비잔티움 제국 접경 지역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티움 제국 간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핵심 요충지였던 이집트를 침공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 이로써 비잔티움 제국은 최대의 곡창 지대를 상실하며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사산조 페르시아는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의 영토를 거의 회복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북방의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는 돌궐 제국의 권력 교체가 일어났다. 동돌궐의 시필 가한이 사망하고 그 동생인 처라 가한이 즉위하여 가한의 자리를 승계했다. 돌궐은 중국의 당나라와 긴밀하면서도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며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교역로와 북방 정세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처럼 619년은 동양과 서양 전역에서 새로운 세력의 부상과 기존 세력의 변화가 교차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