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균(申和均, 1920년~2003년)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자 교육자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사실주의 회화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인물이다. 강원도 삼척 출생인 그는 일제강점기에 미술 공부를 시작하여 해방 이후 한국 화단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연의 생명력과 일상적인 풍경을 따뜻하고 서정적인 시선으로 포착하는 데 주력하였다.
신화균의 예술 세계는 철저한 구상미술과 사실주의적 화풍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당시 한국 화단을 풍미했던 추상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대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재현적 회화의 가치를 고수하였다. 그의 작품은 주로 산과 들, 바다와 같은 한국의 자연경관을 소재로 삼았으며, 안정적인 구도와 온화한 색조를 사용하여 보는 이에게 평온함을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작가 활동뿐만 아니라 미술 단체 활동을 통해서도 한국 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1958년 창립된 사실주의 작가 그룹인 '목우회(木友會)'의 창립 멤버로서 평생 동안 이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아카데미즘 미술의 전통을 지키고 전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화단 내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교육자로서의 신화균은 후학 양성에도 큰 힘을 쏟았다. 그는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였고, 학생들이 기초적인 묘사력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기교보다는 대상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한국 서양화단에 사실주의 정신이 뿌리내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신화균은 평생토록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탐구하며 한국적 서정주의가 담긴 사실주의 회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급변하는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정직한 조형 의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03년 작고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으며 한국 근현대 서양화의 한 축을 담당한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