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이 기사부로(杉井儀三郎, 1940년 8월 20일 ~ )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연출가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명기부터 활동하며 산업의 기초를 닦은 거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데즈카 오사무가 설립한 무시 프로덕션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여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철완 아톰》 제작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출 세계를 구축하며 실험적인 시도와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도에이 동화(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 제작에 참여하며 실력을 쌓았다. 무시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철완 아톰》의 작화와 연출을 맡았으며, 이후 《손오공의 모험》, 《도로로》 등 초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틀을 마련한 주요 작품들의 감독으로 활약하였다. 이 시기 그는 제한된 예산과 시간 속에서 최대한의 연출 효과를 내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의 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스기이 기사부로의 연출적 특징은 정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와 공간의 여백을 활용하는 독특한 감수성에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은하철도의 밤》(1985)은 미야자와 겐지의 원작을 파격적인 캐릭터 해석과 몽환적인 영상미로 구현하여 높은 예술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겐지 이야기》(1987)에서는 일본 고유의 탐미주의적 색채를 극대화하였으며, 아다치 미츠루 원작의 《터치》 시리즈를 감독하여 서정적인 청춘물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II MOVIE》(1994)와 같은 대중적인 액션물에서도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하였다.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그룹 탁(Group TAC)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질적 향상을 이끌었다. 2000년대 이후에도 《폭풍우 치는 밤에》(2005), 《부도리의 꿈》(2012)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현역 감독으로서 창작 활동을 지속하였다. 스기이 기사부로는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오락매체를 넘어 문학적 깊이와 예술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이며, 그의 실험 정신과 독창적인 미학은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