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자와 카모(芹沢鴨)는 신센구미(新選組)의 초대 국장 중 한 명이자 미토번 출신의 무사이다. 본래 미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존왕양이지사로, 신토무념류의 면허개전을 받은 검술 실력자였다. 1863년 에도 막부가 교토의 치안 유지를 위해 모집한 로시구미(浪士組)에 응모하면서 신센구미의 전신인 미부 로시구미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로시구미의 주동자인 키요카와 하치로가 대원들을 이끌고 에도로 돌아가려 할 때, 세리자와는 콘도 이사미 일파와 함께 교토에 잔류했다. 이후 교토 수호직인 아이즈번의 관할 아래 미부 로시구미를 결성했으며, 콘도 이사미, 니이미 니시키와 함께 공동 국장 자리에 올랐다. 세리자와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필두 국장의 지위를 차지하며 초기 조직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세리자와는 과격한 성정과 잦은 주벽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는 대의를 명분으로 교토의 상인들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갈취하거나, 술에 취해 기물을 파손하고 민간인을 위협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특히 시마바라의 연회장인 스미야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나,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한 상가에 대포를 쏜 사건 등은 미부 로시구미가 '미부의 늑대'라 불리며 원성을 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세리자와의 통제 불능한 행동은 조직의 존립을 위협했고, 이는 아이즈번과 콘도 이사미 일파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1863년 9월(음력), 콘도와 히지카타 토시조 등은 세리자와를 암살하기로 계획했다. 야기 저택에서 열린 연회 후 술에 취해 잠든 세리자와를 오키타 소지, 히지카타 토시조 등이 습격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결국 함께 있던 애첩 오우메와 함께 살해당했다.
세리자와 카모의 사후, 신센구미는 콘도 이사미를 정점으로 하는 단일 지도 체제로 재편되었다. 비록 그는 폭압적인 행보로 인해 숙청당했으나, 신센구미라는 조직이 태동하는 과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신센구미가 단순한 낭인 집단에서 벗어나 엄격한 국중법도를 갖춘 치안 유지 기구로 탈바꿈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