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9대 국왕인 성종(成宗, 1457~1494)은 세조의 손자이자 덕종(의경세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혈(李娎)이며, 숙부인 예종이 재위 1년 만에 승하하자 할머니인 정희왕후의 결단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즉위 당시 13세의 어린 나이였기에 정희왕후가 7년간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1476년부터 본격적인 친정을 시작하여 조선의 기틀을 완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성종의 가장 큰 업적은 세조 때부터 시작된 법전 편찬 사업을 마무리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완성하고 반포한 것이다. 1485년에 최종 확정된 이 법전은 조선의 통치 체제와 사회 질서를 규정하는 최고의 성문 법전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은 유교적 법치주의 국가로서의 근간을 확립하게 되었다. 또한 관수관급제를 실시하여 관리들의 자의적인 수탈을 방지하고 국가의 재정 통제력을 강화하는 등 경제 제도 정비에도 힘썼다.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성종은 집현전의 기능을 계승한 홍문관(弘文館)을 설치하여 학문 연구와 왕의 자문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는 왕과 신하가 유교 경전을 토론하는 경연을 활성화하여 하루 세 번씩 참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으며, 훈구 세력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김종직 등 영남의 사림 세력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였다. 이러한 사림의 중앙 정계 진출은 이후 조선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 분야에서도 성종의 재위 기간은 조선 초기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역사서인 《동국통감(東國通鑑)》,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음악 이론서인 《악학궤범(樂學軌範)》, 문학 선집인 《동문선(東文選)》 등 국가의 역량을 결집한 다양한 서적들이 이 시기에 편찬되었다. 또한 성균관에 존경각을 지어 서적을 보관하고 양현고를 확충하여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등 유교 문물 정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여진족의 침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북방 영토의 안정을 도모하였으며, 명나라와는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성종은 25년간의 재위 기간 동안 조선의 제도적, 문화적 기틀을 완성하여 '이룰 성(成)' 자의 묘호를 얻었으며, 1494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38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그의 능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선릉(宣陵)이며, 뒤를 이어 장남인 연산군이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