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섭(鮮于燮)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문필가이다. 190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전문부 예술과에서 수학하며 근대적 학문과 예술적 소양을 쌓았다. 귀국 후에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며 언론과 사회 운동을 통해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고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데 전념하였다.
1920년대 후반 선우섭은 항일 독립운동의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신간회 경성지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고, 청년 운동 단체인 조선청년총동맹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일제 당국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민족 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언론인으로서의 선우섭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와 신동아 편집자로 근무하며 날카로운 필명을 떨쳤다. 그는 세련된 패션 감각과 지적인 풍모를 지닌 당대의 전형적인 '모던 보이'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그의 글쓰기는 언제나 조선의 현실 비판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특히 잡지 편집자로서 다채로운 특집 기획을 통해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대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기여하였다.
1940년 일제의 압력으로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자 선우섭은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였다. 북경에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고 '북경사보' 등의 매체를 통해 현지 한인들의 소식을 전하고 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데 힘썼다. 그는 척박한 타향 생활 속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저항의 끈을 놓지 않았으나, 끝내 광복을 목전에 둔 1944년 북경에서 병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선우섭은 암울했던 식민지 시기, 화려한 지식인의 겉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언론과 현장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민족의 갈 길을 모색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삶은 일제강점기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고뇌와 투쟁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