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기성(鮮于基聖, 1923~2003)은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이자 해방 직후 우익 학생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평양 광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 월남하였다. 그는 반공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삼아 청년 및 학생 계층을 조직화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우익 진영의 실력자로 부상하였다.
해방 정국에서 선우기성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중 전국학생총연맹(전국학련)의 결성을 주도하고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전국학련은 좌익 계열의 전국학생연맹(학연)에 맞서 신탁통치 반대 운동과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지지 운동을 전개하던 핵심 단체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강력한 행동력을 바탕으로 우익 학생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승만과 김구 등 우익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청년방위군 등을 조직하여 후방 치안 유지와 유격 활동에 참여하였다. 전쟁 중에도 반공 청년 단체의 지도자로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활동을 지속했으며,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 과정 등 군 관계 업무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활동은 전후 대한민국 보수 진영의 청년 운동 조직이 기틀을 잡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전후에는 대한청년단과 이북5도민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며 실향민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반공 사상을 고취하는 데 전념하였다. 특히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사회적 움직임을 주도하며 보수 시민사회 단체의 고문직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해방 직후의 긴박했던 정치 상황과 학생운동의 이면을 기록한 회고록을 남겨 현대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선우기성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건국 초기 좌익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 청년 지도자로 높게 평가하는 반면, 진보 진영이나 일부 학계에서는 해방 정국 당시 발생한 각종 정치적 폭력 사건과 연루된 점을 들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기도 한다. 2003년 별세할 때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몸소 체험하며 보수 진영의 상징적 인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