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견문』은 조선 말기의 근대 사상가 유길준이 서구 문명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최초의 근대적 서구 견문록이다. 1895년 일본 도쿄에서 국한문 혼용체로 간행되었으며, 서양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여 당시 조선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근대화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한 계몽 서적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유길준은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근대화의 실상을 목격하였고,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수학하던 중 갑신정변 소식을 듣고 유럽을 거쳐 귀국하였으나, 귀국 직후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연금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유길준은 이 연금 기간을 활용하여 자신이 보고 배운 서구 문물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서유견문』의 집필 토대가 되었다.
본문은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의 지리와 인종, 물산뿐만 아니라 서구의 정치 체제인 입헌 군주제와 공화제, 법률 제도, 조세 제도, 교육 및 군사 제도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서구 사회의 일상적인 관습이나 예절, 기술의 발달 정도까지 폭넓게 기록하여 조선인들이 서양 문명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는 당시 서구 사회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체계적인 지식의 틀을 마련해주었다.
유길준은 이 책에서 '개화'의 개념을 단계별로 정의하며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였다. 그는 문명의 발달 정도에 따라 세계를 미개, 반개, 개명으로 나누고, 단순히 서양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실질적인 국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개화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라는 근대적 개념을 소개하며,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언어적 측면에서 『서유견문』은 국문과 한문을 섞어 쓰는 국한문 혼용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는 어려운 한문에 익숙한 지식인층과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혀 지식을 널리 보급하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문체는 이후 한국 근대 문장체의 형성에 기여하였으며, 『서유견문』은 조선이 근대 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