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흐르바라즈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저명한 장군이자 짧은 기간 동안 재위에 올랐던 국왕이다. 본래 이름은 파루칸이었으나, 전장에서 보여준 용맹함 덕분에 '제국의 멧돼지'를 의미하는 샤흐르바라즈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파르티아계 7대 귀족 가문 중 하나인 메란 가문 출신으로, 호스로 2세 치하에서 군사 사령관으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그는 602년부터 628년까지 이어진 비잔티움-사산 전쟁에서 사산 왕조의 승리를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613년과 614년에는 각각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으며, 특히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의 성물인 성십자가를 탈취하여 제국의 수도 크테시폰으로 보낸 사건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어 619년에는 이집트 원정을 주도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고 나일강 유역을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등 사산 왕조의 영토를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확장했다.
전쟁 후반기,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샤흐르바라즈와 호스로 2세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다. 호스로 2세가 그를 불신하여 처형하라는 밀서를 보냈으나, 이 서신이 비잔티움 측에 의해 가로채져 샤흐르바라즈에게 전달되었다. 이에 격분한 그는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군대를 철수시키고 중립을 지켰으며, 이는 사산 왕조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국력이 쇠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호스로 2세의 사후 제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지자, 샤흐르바라즈는 630년 어린 국왕 아르다시르 3세를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사산 가문의 혈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찬탈한 그의 행위는 제국 내 귀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결국 그는 즉위한 지 약 40일 만에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그의 짧은 통치는 사산 왕조의 정치적 정통성과 권위를 크게 실추시켰다.
샤흐르바라즈의 생애와 몰락은 사산 왕조가 멸망으로 치닫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뛰어난 군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야욕과 왕실과의 불화로 인해 제국의 붕괴를 가속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죽음 이후 사산 왕조는 극심한 내전에 시달렸으며,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발흥한 이슬람 세력의 침공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