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우춘(常遇春, 1330년 ~ 1369년)은 중국 명나라의 개국 공신이자 탁월한 군사 전략가이다. 자는 백인(伯仁)이며 호는 악비(鄂飛)이다. 현재의 안휘성 회원현 출신으로, 주원장이 원나라에 대항하여 봉기했을 때 그의 휘하에 들어가 명나라 건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서달(徐達)과 함께 명대 초기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며 주원장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상우춘은 본래 도적 떼의 일원이었으나, 주원장의 인품과 도량에 감화되어 1355년 그에게 귀순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하를 횡단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여 '상십만(常十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그의 뛰어난 용맹과 지휘 능력을 상징하는 칭호였으며, 실제로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적의 진영을 돌파하는 돌격대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가장 큰 군공 중 하나는 1363년 파양호 대전에서 진우량(陳友諒)의 대군을 격파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상우춘은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용감하게 싸워 주원장이 승기를 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그는 서달과 함께 북벌군을 이끌고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현재의 베이징)를 점령하여 원나라 세력을 북쪽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뛰어난 기동전과 전술을 선보이며 명나라의 영토 확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군사적 재능과는 별개로 상우춘은 성격이 급하고 살육을 즐기는 면모가 있어 주원장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그는 항복한 포로들을 학살하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했으나, 주원장은 그의 뛰어난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엄격히 훈계하면서도 중용했다. 그는 부하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솔선수범하는 장수였으며, 전장에서는 항상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는 용맹함을 보였다.
상우춘은 1369년 북방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유차(柳河)에서 40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주원장은 크게 슬퍼하며 그를 악국공(鄂國公)에 봉하고 나중에 개평왕(開平王)으로 추존했다. 그는 사후에도 명나라 최고의 공신 중 한 명으로 기려졌으며, 후대 민간 전승이나 무협 소설 등에서도 용맹한 장군의 전형으로 자주 등장하며 그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