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군(司衛軍)은 고려 시대 중앙군 조직인 6위(六衛) 중 하나인 사위위(司衛衛)에 소속된 군대를 의미한다. 고려의 중앙 군제는 2군 6위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사위위는 그중에서도 왕궁의 수비를 전담하는 핵심적인 부대였다. 성종 대에 처음 체제가 정비되기 시작하여 목종 대에 이르러 6위의 명칭과 직무가 구체화되면서 사위군이라는 명칭도 확립되었다.
사위군의 주요 임무는 국왕의 행차 시 호위와 궁궐 문을 지키는 문금(門禁) 업무였다. 이들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궁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왕을 직접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사위군은 단순한 전투 병력이 아니라 국왕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근위병의 성격이 강했으며, 이들의 복식과 장비 또한 다른 부대와 차별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위군의 조직은 상장군(上將軍)과 장군(將軍)의 지휘 아래 편제되었다. 사위위 산하에는 여러 개의 령(領)이 존재했으며, 각 령은 통상적으로 1,000명의 군사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사위군은 국왕의 직속 부대와 같은 성격을 띠었기에 선발 과정에서도 신체 조건이나 충성심 등이 엄격하게 고려되었으며, 이들의 존재는 고려 초기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어 무신정권이 수립되고 권문세족이 득세하면서 기존의 2군 6위 체제는 점차 형해화되었다. 사위군 역시 국가 공식 병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무신들의 사병(私兵) 집단이나 도방(都房) 등에 밀려 위상이 약화되었다. 이후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군제 개편이 반복되었고, 사위군이라는 명칭과 조직은 점차 사라지거나 새로운 명칭의 근위 체제로 흡수되었다.
사위군은 고려의 중앙 집권화 과정에서 국왕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실체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비록 시대적 변천에 따라 그 형태와 역할이 변모했으나, 중앙 관료 국가로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였다. 이들의 운영 방식과 조직 체계는 이후 조선 시대의 국왕 친위 부대 설정에도 역사적 선례로서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