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틀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공식적인 작전 기록이 누락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5월 25일과 5월 26일 사이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 기간은 계엄군이 광주 시내에서 철수한 뒤 전남도청을 재점령하기 위해 수립한 '상무충정작전'의 최종 준비 단계였으나, 군 내부의 핵심적인 명령 체계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기록이 상당 부분 비어 있어 현대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당시 신군부 세력은 광주를 봉쇄하고 무력 진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발포 명령자와 지휘 계통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5월 24일 이후부터 27일 새벽 진압 작전 개시 전까지의 군 전투상보나 작전 일지는 다른 날짜에 비해 현저히 부실하거나 사후에 수정된 정황이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발포 명령의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는 핵심 문서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사라졌다는 점이 진상규명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었다.
시민 사회 측면에서 이 이틀은 '해방 광주'의 마지막 시기이자 가장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시민수습위원회 내에서는 무기를 반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온건파와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는 강경파가 대립하며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계엄군은 외부와의 통신 및 물류를 완전히 차단한 채 최종 진압 작전을 위한 명분 쌓기와 내부 정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라진 이틀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부터 시작되어 최근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당시 현장에 투입된 장교들의 증언과 일부 복원된 문건을 통해 기록 삭제와 조작의 실체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으나, 여전히 누가 최종적으로 무력 진압을 지시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완벽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이 기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의 공백을 넘어, 국가 권력이 자국민을 향해 총칼을 휘두르기 직전의 범죄적 모의와 그 흔적을 지우려 했던 역사적 은폐를 상징한다. 따라서 사라진 이틀의 기록을 복원하는 일은 5·18 민주화운동의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로 여겨지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