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바르디에 제피로

봉바르디에 제피로(Bombardier Zefiro)는 캐나다의 철도 차량 제조사인 봉바르디에 트랜스포테이션(현재 알스톰에 인수됨)이 개발한 고속열차 플랫폼이다. 이 열차군은 시속 250km에서 380km에 이르는 다양한 속도 대역을 지원하며, 전 세계 고속철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동력 분산식(EMU) 설계를 채택한 것이 특징이다. 제피로는 높은 수송 효율과 뛰어난 가속 성능을 바탕으로 중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의 철도 노선에 도입되었다.

제피로 시리즈의 초기 성장은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봉바르디에는 중국의 청도사방기차차량(BST)과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제피로 250 모델을 CRH1이라는 명칭으로 대량 공급하였다. 이어 개발된 제피로 380(중국명 CRH380D)은 최고 영업 속도 시속 380km를 목표로 설계되었으며, 중국의 주요 간선 고속철도 노선에서 운행하며 기술적 완성도를 증명하였다.

유럽 시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제피로 300이다. 이 모델은 이탈리아의 국영 철도 운영사인 트레이니탈리아(Trenitalia)의 요구에 맞춰 히타치 레일(당시 안살도브레다)과 공동으로 개발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ETR 400' 또는 '프레치아로사(Frecciarossa) 1000'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주행 안정성을 갖추었다. 제피로 300은 상업 운행 시 시속 300km 이상의 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기술적 측면에서 제피로는 공기역학적 최적화를 통해 주행 저항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차체는 가벼우면서도 강성이 높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회생 제동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내부 공간은 모듈식 설계를 도입하여 운영사의 필요에 따라 좌석 배치와 편의 시설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2021년 알스톰이 봉바르디에 트랜스포테이션을 인수하면서 제피로 플랫폼의 소유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럽 연합의 독과점 방지 규정에 따라 제피로 V300 기술의 상당 부분은 공동 개발 파트너였던 히타치 레일로 이전되었으나, 제피로가 축적한 고속 주행 기술은 여전히 전 세계 철도 산업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이 기술은 영국의 HS2 고속열차 사업을 비롯한 차세대 철도 프로젝트의 근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