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

보천(寶川)은 통일신라 시대의 왕자로, 오대산 신앙의 기틀을 마련한 고승이자 수행자이다. 신라 제31대 신문왕의 아들이며, 동생인 효명(孝明)과 함께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수행에 전념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기록은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 제3권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조에 상세히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보천과 효명 두 형제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다투기를 피해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보천은 오대산의 중대(中臺) 남쪽 진에방(眞如房)에 머물며 수도하였고, 효명은 북대의 남쪽 끝에 자리 잡았다. 이들은 매일 아침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에 나아가 문수보살을 참배하며 공양을 올렸으며, 신령스러운 샘물을 마시며 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신문왕이 서거하고 그 뒤를 이은 효소왕마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신라의 나라 사람들은 오대산으로 찾아와 두 왕자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청하였다. 보천은 끝내 세속의 권력을 거부하고 오대산에 남아 수행을 계속하기를 고집하였으나, 동생인 효명이 이들의 청을 받아들여 하산하여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신라 제33대 성덕왕이다. 보천은 동생이 정사를 돌보는 동안에도 산에 머물며 국가의 안녕과 불법의 흥왕을 위해 기도하였다.

보천은 오대산의 다섯 방위에 각기 다른 불·보살이 거주한다는 오대산 신앙 체계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임종 전 오대산의 각 봉우리에 사찰을 세우고 공양을 올리는 법식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이는 훗날 오대산이 한국 불교의 성지이자 문수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 근거가 되었다. 특히 그는 중대에 사자암(獅子庵)을 세워 문수보살의 진신이 머무는 곳으로 삼게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천은 왕실의 권위를 종교적 신성함으로 승화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삶은 단순한 은둔이 아니라 불교적 이상향을 현실의 산문(山門)에 구현하려는 실천적 노력의 과정이었다. 비록 정사(正史)에서의 구체적인 정치적 행적은 드물지만,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의 행보는 신라 불교가 민간 신앙과 결합하여 고유한 성지 문화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