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전차

보병전차는 전차의 개발 초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중반까지 영국 육군의 전차 설계 교리에서 비롯된 전차 분류 중 하나다. 보병과 보조를 맞추어 적의 견고한 방어선을 돌파하고 보병을 지원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았다. 당시 영국은 전차의 역할을 보병 지원용인 보병전차와 전과 확대를 위해 기동성을 중시한 순항전차로 이원화하여 운용했다. 보병전차는 참호 돌파 시 적의 포화로부터 승무원과 보병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여 설계되었다.

보병전차의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은 당대 기준으로 매우 두꺼운 장갑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보병의 행군 속도에 맞춰 이동하면 되었기 때문에 기동성보다는 방어력에 모든 설계 역량을 집중했다. 이로 인해 보병전차는 적의 대전차포 공격을 견뎌내며 전진할 수 있는 움직이는 요새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엔진 출력이 낮고 무게가 무거워 주행 속도는 시속 10~20km 내외로 매우 느린 편이었으며, 이는 전차의 전략적 이동이나 기동전 수행에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대표적인 보병전차로는 영국의 마틸다 I, 마틸다 II, 밸런타인, 처칠 전차 등이 있다. 특히 마틸다 II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이탈리아군의 포탄을 대부분 무력화하며 '사막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처칠 전차는 험지 돌파 능력이 우수하여 산악 지형이나 상륙 작전에서 보병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했다. 영국 외에도 프랑스의 르노 R35나 Char B1 같은 전차들이 보병전차와 유사한 용도로 운용된 바 있다.

보병전차는 견고한 방어 진지를 무너뜨리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으나, 대전차 무기의 발전과 전차 간의 교전이 빈번해지면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갑을 두껍게 유지하면서도 적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대구경 주포를 탑재하기에는 차체 공간과 기동력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독일의 고속 기동 전술인 전격전 상황에서는 느린 속도가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적에게 우회당하거나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기에 이르러 보병전차와 순항전차의 구분은 점차 사라졌다. 기술의 발전으로 강력한 화력과 두꺼운 장갑을 갖추면서도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고출력 엔진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센추리온 전차가 등장하며 보병전차의 방어력과 순항전차의 기동성을 통합한 '주력전차(Main Battle Tank)' 개념이 확립되었다. 이로써 보병전차라는 독자적인 분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보병을 보호하고 지원한다는 설계 사상은 현대의 보병전투차(IFV)나 전차 설계에 일정 부분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