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익규

변익규(邊翊圭, 1883~1958)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경기도 시흥(현재의 안양시 만안구 지역) 출신이다. 그는 대한제국 말기에 관직을 지냈으나,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과 국권 회복을 위한 기회를 모색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변익규는 경기도 시흥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조직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되자 그는 보다 체계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상하이에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운영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입법 기관인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 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특히 경기도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임시정부의 행정 체계를 정립하고,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을 연결하는 연락망 구축에 힘썼다. 또한 임시정부 내 여러 정파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통합된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광복 이후 귀국한 변익규는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는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1958년 서거하였다. 그의 묘소는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으며, 그의 고향인 안양시 등지에서는 그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변익규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생애와 활동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어떻게 항일 투쟁에 헌신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