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왕국(Kingdom of Iberia)은 고대 카프카스 지역, 현재의 조지아 동부와 남부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다. 기원전 4세기경 파르나바즈 1세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에게 '이베리아'라는 명칭으로 알려졌다. 이는 서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는 지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지역으로, 현대 학계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코카서스 이베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정학적으로 이베리아 왕국은 고대 세계의 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그리고 이후의 사산조 페르시아 사이에서 중요한 완충 지대 역할을 수행했다.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요충지에 위치한 덕분에 남북을 잇는 교역로를 통제하며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왕국이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베리아 왕국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는 4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기독교의 국교화다. 기원후 327년경, 미리안 3세 국왕은 카파도키아 출신의 성녀 니노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를 국가의 공식 종교로 받아들였다. 이는 인접한 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사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조지아의 정체성과 문화 형성의 근간이 되었다.
문화적 측면에서 이베리아 왕국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고유의 조지아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건축과 금속 가공 기술이 뛰어났다. 수도였던 므츠헤타와 유적지들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헬레니즘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당시의 높은 예술적 수준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조지아 민족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6세기에 접어들며 이베리아 왕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강력한 압박을 받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80년경 페르시아에 의해 왕정이 폐지되었으나, 이후 이베리아 공국 시대를 거치며 저항을 이어갔다. 이 시기의 역사적 경험과 종교적 결속력은 훗날 11세기에 탄생하는 통합 조지아 왕국의 기틀이 되었으며, 오늘날 조지아 역사의 뿌리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