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멸망전

백제멸망전은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여 무너뜨린 전쟁이다. 7세기 중반 백제 의자왕은 즉위 초기에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개 성을 점령하는 등 군사적 우위를 점했으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으면서 한반도의 정세는 급변하였다. 당나라는 고구려 정벌의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 먼저 백제를 제거하기로 결정하였고, 신라는 백제에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고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660년 6월,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명의 당나라 대군은 바다를 건너 백제의 서쪽으로 진격하였고,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명의 신라군은 육로를 통해 백제의 동쪽 경계로 진입하였다. 백제 조정은 적의 대규모 침공에 대한 대응책을 두고 내부에서 의견이 갈려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성충과 흥수 등 충신들의 간언이 무시된 가운데, 나당연합군은 백제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수도인 사비성을 향해 압박해 들어왔다.

백제의 결사적인 저항은 황산벌 전투에서 정점에 달했다. 계백 장군이 이끄는 5,000명의 결사대는 신라의 5만 대군을 맞이하여 네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분전하였으나, 결국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멸하였다. 황산벌을 돌파한 신라군은 기벌포에서 당나라 수군을 저지하려던 백제군을 격파한 당군과 합류하여 사비성을 포위하였다. 백제군은 끝까지 성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비성이 위태로워지자 의자왕은 태자 부여융과 함께 웅진성으로 피신하여 재기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웅진성의 수문장인 예식진의 배신 혹은 압박으로 인해 의자왕은 결국 나당연합군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온조왕이 건국한 이후 약 7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백제의 역사는 660년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의자왕과 왕족, 그리고 많은 백성은 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국가는 멸망했으나 백제의 유민들은 복신, 도침, 흑치상지 등을 중심으로 주류성(현 서천 혹은 부안)과 임존성(현 예산)에서 백제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일본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을 옹립하고 3년 동안 나당연합군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그러나 지도부의 내분과 663년 백강구 전투에서 왜의 지원군이 당나라 수군에 완패하면서 부흥 운동은 최종적으로 실패로 끝났고, 백제의 영토는 신라와 당나라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